2008년 05월 30일
늑대인간
늑대는 우랄 산맥으로부터 지브롤터 해협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체를 무대로 하고 있었고, 곰은 이곳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었다. 도처에 늑대가 있었고 늘 늑대를 조심해야 했다는 점 때문에 늑대 사냥은 시골이든 도시이든 그 지역이 얼마나 '건강한가'에 대한, 그리고 그해가 얼마나 살기 좋은 해인가에 대한 지표가 될 정도였다. 잠시라도 주의를 늦추거나, 경제가 후퇴하거나 또는 겨울 사정이 나빠지면 늑대 수가 증가했다. 1420년 성벽의 틈새를 통해, 또는 간수가 없는 성문을 통해 늑대떼가 파리로 들어왔다. 1439년 9월에 다시 늑대가 출몰했는데, 이번에는 파리외곽의 몽마르트와 생-탕투안 성문 사이에서 사람들을 공격했다. 1640년에는 늑대가 두 강을 건너 물레방아 근처를 통해 브장송 시에 들어와서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잡아먹었다." 1520년경에 프랑수아 1세가 창설한 늑대 사냥 부대(grands louvetiers)는 영주와 마을사람들을 징발해서 몰이사냥을 했다. 1765년에 제보당에서도 "늑대 피해가 엄청나서 괴물 같은 늑대가 한 마리 있다고 믿게 되었다." 1779년에 한 프랑스 인은 이렇게 썼다: "600년 전에 영국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늑대를 멸종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영국 같은 섬나라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프랑스처럼 넓고 사방으로 열려 있는 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1783년에만 해도 상공 회의소 의원들(Députés du Commerce)은 "영국에다가 늑대를 많이 들여보내 대다수의 인구를 없애버리자"는 몇년 전에 제기된 제안을 토의하지 않았던가! 비록 늑대가 유럽 대륙의 대지에, 또 독일이나 폴란드의 먼 삼림지대에 붙박혀 있다고 해도, 프랑스는 늑대에 대해서도 교차로 역할을 하는 지리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1851년까지도 베르코르에서는 아직 늑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일상생활의 구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유럽에서 늑대인간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었구나. 우리나라에는 조만간 소인간(Werecow)이 등장할지도.
# by | 2008/05/30 00:2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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